‘연봉킹’ KB손해보험 황택의 “후회없이 제 기량 맘껏 펼치고 싶어요”

킹(KING), 넘버원(NO.1)은 최고 또는 1인자를 의미한다. 프로선수라면 성적 또는 몸값을 얘기할 때 그런 수식어가 붙곤 한다. KB손해보험 세터 황택의(24)가 킹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연봉 7억 3천만원으로 프로배구 연봉킹이다. 20대 초반 나이에 이제 프로데뷔 5년째인 그에게 다소 이르고 부담스런 칭호로 보인다. 내일의 킹을 꿈꾸는 어린 왕자란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택의는 KOVO가 프로배구 연봉현황을 공개했던 지난 7월 관심 스타로 급부상했다.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그의 솔직한 속마음과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과거부터 차세대 세터로 거론되고 있는 현재까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더스파이크>가 황택의를 찾아갔다.

 

모두가 놀란 ‘NEW 연봉킹’
연봉 7억 3천만원이 시사하는 의미는 적지 않다. 먼저 한국 배구 사상 최초로 7억원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이다. 5년 연속 남자부 1위 자리를 지켰던 한선수(6억 5천만원)도 훌쩍 넘었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액수였다. 한선수(대한항공), 신영석(현대캐피탈), 박철우(한국전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선수들보다 높게 책정된 연봉에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KB손해보험이 다음 시즌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행사하는 황택의에게 선 투자를 단행한 셈이다. 차기 국가대표 세터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KOVO 연봉 발표가 난지 한참 지났는데도 황택의에게는 여진이 남은 듯 했다. 그는 자신을 높이 평가해준 구단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구단에서 먼저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셨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 정도를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부담이 됐지만 우선 저를 좋게 봐주신 거잖아요. 거기에 감사할 따름이죠. 주변에서도 축하 많이 받았어요.”
외부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KB손해보험은 2010-2011시즌 이후 단 한 번도 봄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주전 세터로 활약한 시즌 동안 이렇다 할 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프로 다섯 시즌 째를 맞이하는 선수 커리어에 비해 과대평가가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황택의도 이를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좋지 못한 주변 반응에 위축도 됐다. 자신에게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최근 성적이 좋지 못했기에 밖에서 들리는 말들이 맞는 말이긴 해요. 그래도 속상하고 서운한 것보다는 더 열심히 해서 성적으로서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담을 계속 안고 있다 보면 제가 너무 나약해질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받게 된 이상으로 더 노력해서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네’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면 더는 그런 말들이 안 나오지 않을까요?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고액 연봉을 받는 만큼 의지도 굳건히 하고 있다. 차기 시즌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무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아무리 잘하겠다고 마음먹어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질 땐 지더라도 후회 없이 제 기량을 맘껏 펼치고 싶어요.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요.”
“지난 시즌에도 느꼈지만 중요하지 않은 시즌은 없어요. 선수마다 중요한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지난 시즌이 유독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즌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의욕이 앞서더라고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역효과가 났어요. 그래서 이번 시즌은 잘하려는 마음을 앞세우기보다는 코트 안에서 재밌는 배구를 해보고 싶어요. 즐겁게 경기를 뛰다 보면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실력이나 혹은 그보다 더 좋은 기량이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선수단 분위기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단계예요.”
대학 아마 때 불발된 이상렬-황택의 만남
프로에서 성사
황택의가 구슬땀을 흘리며 새 시즌 준비에 한창일 때 KB손해보험 프런트는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KB손해보험은 지난 4월 경기대 감독으로 재직하던 이상렬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상렬 감독은 황택의를 두고 ‘세터 계보를 이을 선수’라고 칭했다. 황택의의 연봉에 따른 주변 반응에도 이 감독은 “팀에 필요한 선수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를 책정받은 것이다.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신장이 좋고 세터로서 갖춰야 할 역량이 충분하다. 거친 패스를 조금 더 다듬는다면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선수다”라고 황택의의 미래를 내다봤다.
이상렬 감독은 부임 후 황택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애썼다. 안되는 걸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잘되는 것 위주로 먼저 풀어가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황택의를 포함한 선수들도 호응하고 나섰다. “감독님께서는 제가 편한 마음을 가지게끔 많이 도와주셨어요. 분위기 좋게, 긍정적으로 하자고 많이 말씀하세요. 처음엔 몰랐는데 최근 들어 재밌는 배구가 뭔지를 알 것만 같더라고요. 행복하게 배구하는 중이에요.”
이상렬 감독은 경기대 감독 당시 송산고 세터로 뛰던 황택의를 눈여겨봤다. 경기대로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돌고 돌아 프로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게 됐다. 이 감독은 인연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만나게 된다고 믿었다. 이 감독은 “그때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날 것이고, 헤어질 사람은 언젠가는 헤어지게 된다. 택의와 대학교 때 함께하지 못한 게 마음 한 켠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게 맞는 말 같다”라며 황택의를 바라봤다.
황택의는 2020-2021시즌이 완료되면 프로에 들어와 첫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얻는다. 때문에 차기 시즌은 그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지금 모든 것이 부담되긴 해요. 그렇지만 부담된다고만 생각하면 코트에서 더 위축될 것 같더라고요. 부담을 떨쳐내려고 멘탈 관리 열심히 하고 있어요.”
‘최연소 1순위’, ‘최초 1순위 세터’
프로입문 후 순탄치 않았던 네 시즌
황택의는 프로 데뷔가 빨랐다. 성균관대 2학년이었던 그는 2016-2017시즌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다. 그는 송산고 재학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고3이 되자 많은 대학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낼 정도였다. 그가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하자 전 구단이 욕심을 냈다. 예상대로 그는 1라운드 1순위로 KB손해보험의 지명을 받고 본격적인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황택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1순위 최초 세터’, ‘1순위 최연소 선수’라는 여러 수식어가 뒤를 따랐다. 세터의 전체 1순위 지명은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최초였다. 황택의에게 4년 전 드래프트 당시를 떠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벌써 4년이나 지났어요. 너무 오래됐는데요?(웃음) 프로는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무대잖아요.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도전자 입장으로 빨리 프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실력 좋은 선수들과 함께 몸을 부딪치면서 성장하고 싶기도 했고요. 1순위로 뽑힐 수 있겠다는 말이 주변에서 간간이 들리더라고요.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뽑히니까 정말 얼떨떨하면서도 실감이 안 났어요. 감사하게도 구단에서 저를 높게 평가해주셨어요. 팀에 와서도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지가 불타올랐었던 기억이 나네요.”
신인이지만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꿰찼다. 세터라는 포지션은 코트 내 지휘자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팀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부담감은 배가 됐을 터. 더군다나 보통 신인 세터가 팀 주전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회가 왔을 때 단번에 자리를 꿰차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처음 경기 뛸 때 형들이 편하게 해줘서 부담되거나 불편했던 건 딱히 없었어요. 다만 확실히 프로는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대학교 때는 ‘프로도 다 똑같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느끼다 보니 프로의 벽은 확실히 높더라고요. 긴장될 때면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소통하면서 풀어가려고 하다 보니 경기가 흘러가는 방향을 깨우치게 됐어요. 경기에 몰입하면서 첫 시즌을 보냈죠.”
생애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왕까지 수상했다. 29표 중 28표를 쓸어 담았다. 황택의는 34경기 128세트에 출전하며 54점을 기록했다. 서브로만 21점을 기록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황택의와 같은 시기에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 중 단연 눈에 띄는 활약이었다. 그는 “솔직히 잘해서 받았다기보다는 출전시간이 다른 신인선수들에 비해 많다 보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래도 생애 딱 한 번밖에 받지 못하는 상이기도 했고, 주위에서 나를 좋게 평가해줬다”라고 말했다. 이어 황택의는 “신인왕을 수상하고 나서 책임감이 생겼다.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달라진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했다.
신인왕 수상과 함께 황택의는 그해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됐다.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황택의가 되돌아본 프로 네 시즌은 순탄치 않다. 팀 성적은 매 시즌 하위권에 머물렀고 외국인 선수 운도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황택의는 2018-2019시즌 개막전에서 블로킹 착지 과정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는 불운도 겪었다.
“몸 컨디션이 엄청 좋은 날이었어요. 꼭 몸이 좋은 날 부상을 당하는데 딱 그날이었어요. 더 조심해야 했죠. 코트 밖에서 핸드폰으로 경기를 지켜보는데 착잡하더라고요. 마음 한쪽이 이상했죠. 재활이 무사히 끝나서 복귀하긴 했지만 많이 아쉬운 시즌이었어요.”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지난 시즌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KB손해보험은 개막전에서 승전보를 울리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이후 12연패에 빠졌다. 팀 창단 후 최다 연패였다. 매번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해 무너졌다. 계속되는 연패에 팀 분위기도 깊게 가라 앉았다. “이길 수 있던 경기가 많았어요. 그런 경기를 잡지 못하다 보니 연패가 길어졌어요. 선수들도 많이 위축된 상태였고, 저도 중심을 잡지 못했어요. 선수들끼리 ‘으?으? 해보자’, ‘똘똘 뭉치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이번 시즌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죠. 지금에서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다시는 경험해보고 싶지 않아요.”
힘든 시기였던 만큼 팬들의 응원은 그에게 더욱 힘이 됐다. ‘할 수 있다 KB’라는 팬들이 만든 응원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단은 해당 문구를 플랜카드로 제작해 경기장 곳곳에 배치했고, 팬들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닿을 수 있게끔 여러모로 힘썼다. 응원 덕분일까. KB손해보험은 49일 만에 연패에서 벗어났다. 연패 탈출과 동시에 우리카드, 대한항공을 차례로 잡으며 시즌 첫 3연승을 이어가기도 했다. “12연패를 했을 때 평소보다 팬들이 더 많이 경기장을 찾아주셨어요. 너무 감동이었고 한편으로는 죄송했어요. 그때 느꼈죠. ‘진짜 팬은 이런 거구나’라고요.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응원해주시는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운명의 장난인 걸까. KB손해보험은 2020-2021시즌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2020 한국배구연맹(KOVO)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서 1순위로 선발한 노우모리 케이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당시 휴가 중이었던 선수단과 접촉은 일절 없었다. 소식을 들은 황택의도 당황스러웠지만 ‘액땜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저를 포함해서 선수들 모두가 걱정했죠. 그래도 나이가 어리니까 빠르게 회복할 것 같았어요. 1순위로 뽑힌 선수인 만큼 실력적으로도 기대가 높았고요. 아직 정식 훈련을 같이 해보진 않았지만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한선수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세터
대담한 패스와 강한 서브로 주목
황택의는 2016-2017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동시에 첫 성인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세터로서 190cm의 준수한 신장을 지닌 황택의는 대담한 패스와 강서브가 장점이다. 황택의는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모든 걸 다 이룬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막상 경험해보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대학교 때 생각해오던 프로 무대가 달랐던 것보다 소속팀에서 생각해보기만 했던 성인 대표팀을 직접 겪어보니 정말 천지차이더라고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표팀 형들의 마인드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초반에는 제가 위축되는 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실력적으로 워낙 잘하기도 잘하시고 해야 할 걸 알아서 찾아가는 게 멋있기도 했어요. 주눅도 들었지만 대표팀에 다녀오는 것 자체만으로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곳이잖아요. 대표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배우고 오자는 마음이었어요.”
국제대회를 경험하고 온 선수들은 대게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세계 무대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배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황택의는 기술적인 부분 외에 심리적으로 자신을 한층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하다 보면 0-3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국내리그에서 지는 것과는 깨닫는 부분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국제대회는 확실히 세계적으로 배구를 잘하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거잖아요. 져도 뭔가 하나라도 배울 게 있더라고요. 졌다고 해서 마냥 허무하고 허탈하지만은 않았어요. 이기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그 외적으로 배우고 깨닫는 게 있으면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곤 해요. 제가 대표팀에 다녀와서 심리적으로 한 층 더 성장한 것 같아요.”
황택의는 이민규(OK저축은행), 노재욱(삼성화재)과 함께 ‘차세대 세터’로 주목받고 있다. 남자 대표팀 주전 세터 한선수(대한항공)는 35세로 적지 않은 나이다.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헌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한선수 뒤를 이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황택의는 “초반에는 ‘다른 실력 좋은 형들도 많은데 왜 나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선수 형이 워낙 잘하시고 실력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본보기가 되는 선수여서 더 크게 다가왔다. 부담감이 되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나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는 것보다는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차세대 세터’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자체가 나를 좋게 봐주고 계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라며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황택의는 자신의 장점으로 속공 패스를 꼽았다. 최근 들어 자신감이 찼다고 했다. “속공이 간결하고 심플하잖아요. 득점 확률도 높은 공격 패턴이기에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리시브만 된다면 굳이 어렵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편하게 득점할 수 있는 패턴이기도 하고, 요즘 패스하는데 자신감이 생겼어요.”
대표팀에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들었다.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카타르와 경기 때 제가 (박)철우 형 대신 서브를 넣으러 코트에 들어갔어요. 그때 (한)선수 형한테 미리 말을 했는데 선수 형이 깜박하셨나 봐요. 갑자기 저한테 공이 올라오길래 후위 공격을 때렸어요. 배구를 시작한 이후로 세터가 올린 공을 처음 때려봤어요. 그것도 후위 공격으로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역시 선수 형 패스가 좋더라고요. 딱 공격하기 좋았어요. 공격하면서도 속으로 ‘잘 때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준비 잘 하고 있었으면 국제무대 첫 후위 공격 득점을 할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쉬웠어요.”
사촌형따라 시작한 배구
다시 태어나도 세터
황택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배구를 처음 접했다. 사촌형과 함께 배구를 경험한 이후 배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본인이 배구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이 끝난 후 아빠한테 배구가 재밌다고 말했어요.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엔 배구부가 없었어요. 그래서 배구부가 있던 학교로 전학을 갔죠.”
어렸을 적 황택의는 키가 크지 않았다. “당시 코치님께서 ‘너는 키가 작으니까 세터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키가 작으면 세터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세터도 키가 커야 유리한 포지션이잖아요. 세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신장이 작아서 시작한 세터였지만 황택의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연령별 대표팀 단골멤버로 뛰었다. ‘재능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당하지 못하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하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황택의는 어느새 배구를 즐기고 있었다. “세터가 재밌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약간 뭐랄까 사기꾼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사기 치는 게 적성에 맞는 건가요) 적성에 맞진 않고요. 그렇다고 제가 사기를 잘 친다는 건 아니에요. 사기 쳐 본 적도 없는 걸요.”
세터라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깡’이 필요하다. 세터는 ‘코트 위 지휘자’라는 말처럼 언제나 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세터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흔들리기에 맡겨진 책임은 막중하다. 과감함과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고집(?)이 중요할 때도 있다. 황택의는 코트 안과 밖 성격 차이를 두고 정반대라고 이야기했다.
“코트 안에서는 승부욕이나 고집이 강한 편이에요. 불같은 성격이 나오기도 하고 승부사 기질이 은근 있는 것 같아요. 코트 밖에서는 양보도 많이 하고 순해져요.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확실한 건 코트 안보다는 사람이 유순해진다고 해야 하나? 장난을 많이 쳐요. 원래 고집 있는 성격이 아닌데 경기만 뛰면 성격이 변한다니까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공격수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포지션이지만 황택의는 묵묵히 뒤를 서포트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전혀 서운한 건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세터는 ‘꾸준함’을 가진 선수예요. 화려한 기술로 튀는 것보다는 선수들이 빛을 발휘할 수 있게끔 묵묵히 도와주는거요. 포지션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고 해도 세터할 것 같아요. 세터가 저한테는 정말 매력적인 포지션으로 다가와요.”
황택의하면 ‘서브가 좋은 선수’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세계 배구 트렌드가 ‘강서브’로 바뀌고 있기에 이는 더할 나위 없는 플러스 요인이다. 그가 강서브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송산고 재학 시절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감독이 먼저 본인이 연구한 서브 기술을 황택의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황택의 서브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플로터 서브를 구사했어요. 감독님께서 먼저 스파이크 서브를 권유해주셨을 때 처음엔 어색했죠. 모든 선수가 그럴 거예요. 서브 자세를 고치는 건 어렵다는 걸요. 감독님께서 계속해서 자세를 지적해주시고, 피드백을 많이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 제가 이 서브 기술을 가지게 됐어요. 감사하죠”
황택의 누나 황윤정(수원시청)씨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IBK기업은행에서 잠시 프로 생활을 했다. 신장이 크지 않았던 황택의와 달리 황윤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커서 배구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누나보다는 제가 먼저 배구를 시작했어요.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커서 강압적으로 배구 선수의 길에 들어섰죠. 사실 누나랑 만나면 배구 이야기를 거의 안 해요. 누나가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털어놓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 못해요.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 흔한 친남매처럼 지내고 있죠.”
가장 좋아하는 말은 ‘할 수 있다 KB’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게 꿈이다. 프로 5년 차에 접어든 황택의도 마찬가지다. 우승이 고프지만 욕심내려 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갈 생각이다. 이상렬 감독도 목표를 너무 높게만 잡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하고 싶죠. 감독님께서는 목표를 설정할 때 너무 높게 잡지 말라고 하세요. 높게 잡다 보면 가다가 지친다고 하시더라고요. 적당한 목표를 잡고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샌가 위에 올라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우선 팀이 하위권에서 탈출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거예요.”
황택의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슬럼프를 자주 겪기도 했다. “다른 선수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슬럼프가 자주 와요. 슬럼프가 오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많이 겪다 보니 자연스레 극복하는 법도 깨우쳤어요. 슬럼프가 오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저 자신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요. 배구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잖아요. 그래서 슬럼프가 오면 배구에 대한 생각을 잠시 놓아두려고 해요. 익숙하게 해오던 걸 하지 않을 때 문득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배구가 자연스레 생각나거든요. 그럴 때 배구가 다시 재밌어져요.”
KB손해보험은 ‘고춧가루 부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18-2019시즌 4라운드까지 단 7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5라운드 뒤늦게 시동이 걸렸다. 우리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을 상대로 승리하며 승점 13점을 챙겨 상승세를 탔지만 순위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선두 경쟁을 하는 팀에게 발목 잡는 팀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봄배구를 위해서는 초반부터 승점 관리를 잘해야 하기에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꾸준함’을 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 팀을 도깨비 팀이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차기 시즌에는 그럼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요. 매 경기 승리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잘하는 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요. 코트 안에서 선수들이 밝고 여유로운 모습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해야죠. 긍정적인 분위기가 계속되다 보면 팀 성적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팀 문화도 그런 쪽으로 바뀌길 바라고 있어요.”
KB손해보험 세터진은 황택의, 최익제, 김지승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시즌까지 함께했던 양준식은 지난 3월 군에 입대했다. 1996년생인 황택의는 세터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보통 제 나이 정도면 다른 팀에서는 막내 위치에 있는데 여기선 아니잖아요. 후배들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제가 보고 느낀 걸 많이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의의 경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기량도 향상되고 팀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그러면서도 키 플레이어로 윙스파이커 김정호를 언급했다. 김정호는 2018-2019시즌 이강원과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화재에서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다. 팀 리빌딩 중심에 서있는 그는 신장은 작지만 공격과 수비에서 제 역학을 해주며 팀 주포로 성장하고 있다. 황택의는 “정호가 측면 한자리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즌보다 리시브와 공격에서 성장했다. 아무래도 정호가 어떻게 해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17-2018시즌과 2018-2019시즌 첫 경기까지 함께했던 외국인 선수 알렉산드리 페헤이라는 2020 KOVO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우리카드의 선택을 받아 다시 V-리그로 돌아왔다. 동료가 아닌 상대팀으로 알렉스를 만나게 된 황택의는 “영어 울렁증이 있어 긴 이야기는 안했다. SNS로 축하 인사를 짧게 건넸다. 알렉스는 배구를 정말 잘한다. 무섭기도 하지만 같이 보낸 시간이 있기에 장단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단점을 잘 공략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면 분명 보완해서 나올 거니까 공개하진 않겠다”라며 웃었다.
황택의는 배구 인생 터닝포인트를 ‘현재’라고 이야기했다. “이번에 계약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껏 배구를 하면서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잘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저부터 달라지고 싶어요. ‘쟤 진짜 열심히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다가 힘이 들 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려고요.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을 잡고 12연패 탈출했을 때… 그때 정말 감정이 북받쳐 올랐어요. (박)진우 형은 울었는데 저는 막 울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잊을 수가 없어요. 물론 아직 제가 프로에 와서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을 경험해보지는 못해서 범위가 한정적이긴 하지만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도 하고 당시 감정을 잊고 싶지도 않아요.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가오는 시즌 새롭게 호흡을 맞추는 케이타와 호흡에 대해서도 한 마디 보탰다. “자가격리를 하기도 했고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어려움이 있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재밌게 준비 중이에요.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할 테니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차기 시즌 어떤 말을 듣고 싶냐고 물어봤다. “사실 욕만 먹지 않으면 무슨 말이든 다 수용할 수 있어요. 욕을 먹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딨겠어요(웃음). 어느 정도 비난은 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거든요. 그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도 하고요. 욕이든 칭찬이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아요. 개인상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제 할 일을 하면서 인정받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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